핀잔을 주셨다.
“버릇 좀 고쳐. 자네만 노력파는 아니니까.”
“예.
하지만 제가 제정신이 아니라 그런지,
너무 공부를 안 한단 생각이 들었더랍니다, 그때엔,
‘하버드대에선 놀고 먹는군’.”
“그런데 말이야, 난 자네가 했던 대답이 기억나.”
“무…슨.”
“이 질문 말일세. ‘그렇다면 외우기 어려운 것들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과연 일반인들이 양자물리학을 쉽게 배울 수 있을까?’”
“아! 아까 전에 말씀하셨죠.”
“자네가 이렇게 말했지.
그건 우리 과학자들이 꽤가 없어서 그런 겁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식만을 가르쳐야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익혀야 하는지’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지식만을 나열한 나머지, 무엇이 중요한지도 가르쳐주지 못하며, 어떻게 익혀야 하는지도 가르쳐주지 못하며, 결국 그들에게서 가능성 하나를 빼앗아버립니다.
결국 안타까운 미래의 과학자들을 놓치고야 맙니다.”
지나 양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몇몇 복잡한 걸 외우기 좋아하는 미치광이들만이 하버드 물리학과에 들어오게 되겠지요.’
할아버지께 많이 들어본 말이에요.”
“아….”
“자네의 그 말이 인상적이었네.
난 너무 많은 걸 놓쳐온 건 아니었을까?
단지 자네 말대로 알아듣지 못할 헛소리가 아니었을까?
간혹 정신나갈 정도로 과학에 미친 또라이들 몇몇이 그걸 이해해내겠지. 과학에 미친 놈들이 가끔씩 우리 주변에도 있어. 하버드대 물리학과에 가면 그런 놈들 투성이야.
하지만 말이야, 다른 이들은?
어쩌면 문 밖에서 서성이다 돌아간 이들 중에 더 재능있는 자가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접해보지도 못하고 돌아가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울 정도로?
설령 업으로 삼지 않는다 해도… 그들에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 않나?
자네가 딱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었지,
‘수업받을 수 있는 권리만큼 그 수업을 이해받을 수 있는 권리도 마찬가지로 필요합니다.’”
“정말 우수한 재능을 가졌을지도 모르는 이들이… 아무렇게나 나열된 지식에 질려 돌아가 버리는 겁니다.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를 어떻게 볼지.”
“예로 뭘 들었는지 기억나는가?”
“물론이지요.
그때 제가 한 말의 내용은 ‘과학자에겐 지식을 만드는 것만큼 그 지식을 쉽게 요리할 수 있는 소양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새로운 인식이었을 겁니다.
제 기억으론 이렇게 예를 들었을 겁니다.
그냥 간단하고 쉬운 예였지요.
‘교수님,
이를테면 쿼크는 6종류가 있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up·down․strange·charm․bottom·top이지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것만으론 외우는 게 그렇습니다. 너무 산발적입니다.
하지만 뜻을 보면 쉬워집니다. 유사한 뜻으로 바꿔보면, 위․아래․이상한․매력적인․밑바닥․꼭대기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up·down, strange·charm, bottom·top으로 묶으면 됩니다.
‘위’와 ‘아래’. ‘이상한’과 ‘매력적인’. ‘밑바닥’과 ‘꼭대기’.
뜻이 이렇게 세 쌍으로 묶입니다.
물론 이건 그야말로 쉬운 예입니다. 저는 일단 이렇게 묶어서 외웠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묶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지식은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해가 깊으면 그걸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자들은 너무 지식을 방치해버립니다.’
그때 한 말은… 적어도 우리는 과학의 문턱을 낮출 수 있지 않습니까! 하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소양이 없네. 자네에게서 약간의 빛을 보지.”
f 교수님께서 씁쓸하게 고개를 저으셨다.
교수님께서 잠시 내 등 너머를 바라보시더니 손을 흔드셨다.
누구를 부르시는가 해서 뒤를 돌아보니 서른 가량의 젊은 청년이었다.
“이리 앉게.”
큰 키에 잘생긴 얼굴이 인상적이었는데, 피부가 상당히 하얀 느낌이었다.
그래서 똑같이 독일계인가 하고 생각했다.
교수님께서 입을 여셨다.
“이 친구 인디언이야. 우리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아니신가.”
그 청년이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전혀 인디언으로 보이지 않습니다만.”
“그래서 내가 인디언으로 말했지. 혼혈일세. 어머니가 러시아인이야. 부부가 둘 다 저기 뉴욕주립대 의대 교수야.”
제1인종과 제2인종이 섞인 혼혈이 전혀 다른 제3인종의 모습과 비슷한 경우가 몇몇 있다. 러시아인과 인디언이 섞여 독일인처럼 보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전혀 다른 특성이 만나서 또 다른 중간특성을 만드는 셈이니까.
어쨌거나 나로서는 그가 환영이었다.
“반갑습니다.”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 또한 내 악수에 응하였다.
“저야말로. 공재웅 씨라 들었습니다. 유명하시던데요.”
“아, 예.”
인물이 워낙에 좋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훤칠하고 잘생기셨네요”하고 입 밖으로 튀어나와버렸다.
“하하, 그렇습니까.
그런데 이거 배가 고프네요.”
교수님께서 “아!”하고 알아채시더니 “내가 나이가 들다보니 배가 어디에 붙었는지 까먹었어”라며 한숨을 쉬셨다.
“자네들, 뭐 먹을 텐가? 교수니까 내가 사지. 한번 교수가 되면 영원히 교수인 걸세.”
“더치페이가… 낫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교수님께서 “아냐, 아냐”라고 고개를 내저으셨다.
“저는 그냥 초밥정식으로 A세트를 고르겠습니다.”
“나도 자네와 같은 걸로 하지.”
지나 양과 미남 청년도 서로를 바라보더니 뜻을 정한듯 하였다.
“할아버지, 다 드실 수 있어요?”
“다 못 먹지. 난 아까 전에 식사하고 왔어.”
“저는 그냥 레모네이드 하구요. 정식 세트는 무리니까, 스몰사이즈 세트로 고를게요. 스몰 세트 중에서 참치 스시.”
“저도 f 교수님이나 공 교수님처럼 먹고 싶지만, 조금 무립니다. 메뉴 중에 바게뜨 작은 사이즈로 할게요.”
교수님께서 웃으시며 핀잔을 주셨다.
“자네, 스시집에 와서 바게뜨 먹긴가? 그리고 f 교수님은 또 뭐야?”
미남 청년의 얼굴이 빨개졌다.
지나 양이 나를 보더니 “별명 지어주시겠어요?”라고 물었다.
‘작고, 하얗고, 똑똑하지? 네잎 클로버 어떨까.’
교수님께서 스시주인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나 양, 그러면 네잎 클로버로 불러도 되겠어요?”
교수님께서 부르시다 말고 나를 찾아보시더니 “자네 제정신이 아니군”하며 웃음을 터뜨리셨다.
“괜찮네요. 네잎 클로버. 닉네임치고 좋아요.”
f 교수님께서 “아!”하고 뭔가 깨달으시더니,
“자네 물리학 석사 과정은 언제 배워지?”,
라고 물으셨다.
“하버드 물리학 석사 과정은 고등학교 때 독학했습니다.
하버드에서 배우는 책으로 똑같이 배웠으니까요.”
“그때도 이렇게 대답했었지.
내가 뭐라고 핀잔했었는지 기억나나?”
“글쎄요.”
“나는 그걸 물은 게 아닐세!”
“……?”
“자네하고 나하고 같이 글썼을 때 말한 걸세. 자네가 내 논문 돕고서 그 다음 시기 말이야.”
“아, 그거 말씀하신 겁니까? 그거야 몇 년 안 됐겠습니까.”
“이 친구가 자네가 썼던 첫물리학 책을 보고서 반했던 사내일세.”
“아?”
미남 청년을 보더니 뭔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혹시, 이름이 카우초틴 스미스 씨 아닙니까? 팬레터를 주셨던?
아니겠죠, 설마.
그럴 리가.
하긴.
…당연하겠지…”
나 스스로 말하다가 ‘확신을 잃어 말꼬리가 흐려졌다’.
“맞습니다.”
“예!?”
당황했다.
“카우초틴 스미스입니다.
아버지께서 카우초틴이라 붙여주셨어요. 아버진 입양아라셔 사실 인디언 이름은 잘 모르셨거든요.”
“…인디언 이름엔 대개 뜻이 있던데….”
“카우초틴의 뜻은 ‘위대한 산토끼의 부족’입니다.”
웃음이 터져나왔다.
“‘위대한’하고 ‘산토끼’가 잘 매치는 안 되는군요. 제가 편견이 심한가요.”
교수님께서 장난스럽게 “미남 산토끼라 불러야겠군”이라 말씀하셨다.
교수님께서는 가게주인에게 음식을 주문하면서도 ‘뭔가 얘길’ 나누고 계셨다.
카우초틴이 말하였다.
“아버지께선 조금 무책임하셨어요.
뜻도 모르셨죠. 제가 중학생이 돼서야 스스로 찾아보다 찾아보다 알게 됐으니까.
제가 뜻을 말씀드리니까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름 뜻이 왜 그렇게 우습니?’”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아들은 창피해주겠는데, 아버진 자기 친구들에게 전화하여 일일이 이렇게 말씀하셨죠, ‘내 아들 이름 뜻이 뭔지 알아? 글쎄, 위대한 산토끼의 부족이야. 맙소사! 나도 짓고서도 몰랐지!’”
네잎 클로버가 너무 우스꽝스럽다 느꼈는지 웃으면서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거기에다가, 카우초틴이란 이름은 사람 이름도 아니고, 원래 부족 이름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좀 우스꽝스럽지요. 이름이 미국이라든가 영국, 일본, 중국 내지는 프랑스 같은 거니까요.”
네잎 클로버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예뻐요, 그래도 그 이름은”
나는 웃다가 문득 옆을 바라보니 가게주인은 이미 돌아가 있었고, 그새 주문이 끝났는지 저 멀리서 초밥을 만들고 있었다. ‘탁탁탁탁’거리는 생선 써는 소리가 들려왔다. 계속 지켜보니, 이래저래 뭔가 재료들이 주인의 손에서 오갔고, 본격적으로 초밥을 만드는지 얇고 부드럽게 생선을 썰기 시작했다. 아까 전과는 달리 써는 데에 아무런 소리도 나질 않았다.
고개를 돌려 교수님께 “언제 주문이 끝났지요?”라고 물으니, “자네가 ‘위대한 산토끼’에 정신이 빠져 있었을 때”라 대답하셨다.
다시 돌려보다 문득 서로의 눈이 마주쳤는데,
네잎 클로버가 싱글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던 것이었다.
분위기가 부드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교수님께서 네잎 클로버를 바라보는 표정에 아쉬움과 행복이 가득했다.
‘그녀를 왜 불러오신 걸까?’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는 매우 행복으로 가득한 아가씨였다.
그리고 교수님껜 자신의 전부였다.
그렇다,
교수님은 손녀딸 외엔 가족이 없으셨다.
그 외에 아무도 없으니까.
아들은 8살이 되던 해에 소아암으로 죽었고, 딸은 장성하여 결혼까지 치루었지만 아이를 낳고서 생명을 잃었다.
결국 그에겐 손녀딸 밖에 남질 않았다. 그는 매우 외로운 분이셨다. 아내까지도 젊은 나이에 사별하여 혼자서 딸을 길러왔으니까. 이상하게 결혼을 할래도 연이 닿지 않으셨다 들었다.
매우 외로우셨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분께서 아내를 잃고서 그 후로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매우 고독하고 슬픈 느낌을 가져다주곤 한다.
그 분이 네잎 클로버를 애지중지 키워왔단 말은 이미 학생 때부터 파다했다.
이래저래 교수님에 대한 말을 듣다보면, 느끼는 것은, ‘매우 외로운 분’이라거나 ‘그러면서도 밝고 노력하시는 분’이라든가 ‘자식에 대한 애정이 매우 크신 분’이란 것이었다.
내가 아는 바는 이렇다.
딸의 생명이 손녀와 바뀐 후.
그의 사위는 재혼했으나, 그 이후로도 교수님께선 쭈욱 자기 손으로 네잎 클로버를 맡아 기르길 원하셨다 한다. 유일한 딸의 ‘흔적’이었으니.
그리고 실제로도 그의 사위가 일본으로 돌아갔을 때에 네잎 클로버는 그에게 맡겨지게 된다.
일단 재혼한 상대가 전부인의 아이를 원치 않았고, 그 사위로서도 장기적인 안목을 보면 아이를 남기는 게 좋을 것 같다 판단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그녀의 먼 미래를 보아 미국대학에 진학하려면 미국에서 계속 배우는 게 나을듯 싶었던 것이다.
새 부인의 거부, 아이의 진학, 교수님의 바램,
결국 교수님께서 직접 네잎 클로버를 미국에서 데리고 키우셨다. 살림까지도 도맡아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러면서도 연구를 멈추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참 대단하시단 생각이 들었다.
연구욕도 대단하지만,
‘그는 아버지였을 것이다’.
6년간 아버지가 되어 키워온 것은 작은 부분일지 모른다.
그 힘든 상황에서도 굽히지 않고 양육을 희망해온 걸 보자면,
정이 웬만한 아버지보다 크면 크지, 작진 않을 것이다.
교수님의 표정에서
뭔가 모를듯한 <그리움과 아픔>이 보이는 듯 했다.
교수님께서 자기자신을 향한 내 시선을 눈치채셨는지 네잎 클로버를 보다 말고 나를 향해 윙크를 하셨다.
그 표정에 담겨 있던 잠시간의 아픔이 다시 사라져버렸다.
‘뭔가 이유가 있으셔. 분명해.
그냥 부르신 건 아닐 거야.’
마왕에 대한 생각도 떠올랐다.
이래저래 이 모임에 좀더 충실해질 필요를 느꼈다.
교수님께서
팔짱을 끼시더니
잠시 눈을 감으셨다.
위대한 산토끼와 네잎 클로버가 즐겁게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고요에 잠겼다.
‘교수님께선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걸까?’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분의 눈가가 미묘하게 젖어 있음을 눈치챘다.
마치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감고 계신 것만 같았다.
‘아쉬움?’
식사가 나온 이후로도 교수님께서는 묵묵히 초밥만을 드셨다.
위대한 산토끼와 네잎 클로버는 즐거운 얘기에 빠져서 눈치채지 못한듯 하였다.
교수님을 보고서 느껴지는 바가 커서 나 또한 일단 조용히 초밥만을 먹었다.
가끔씩 그 둘의 얘기에 끼어들 뿐.
“산토끼는 젓가락질이 서툴군요.”
위대한 산토끼가 웃음을 터뜨렸다,
“저는 젓가락질을 잘 못합니다.
그러고 보니 지나 씨는 젓가락을 잘하는 게 당연할 테고, 교수님께서도 능하시군요.”
“교수님께서는 요리물리학으로 유명하셨어요.
요리에 대해선 전문가시죠.
수업 평이 이랬어요, ‘물리학 3분의 1, 요리 3분의 1, 요리로 설명하는 물리학 3분의 1’.”
위대한 산토끼의 웃음이 더욱 커졌다.
초밥을 먹는 와중에 교수님께서 얘기에 끼어드셨다.
“초밥의 온도는 인체의 온도와 같은 36.5도가 가장 맛있지. 밥알 수는 300개. 생선의 종류에 따라 밥의 양념도 미묘하게 달라져.
잘 만들어진 초밥을 먹으면 자기체온을 미각으로 느낄 수 있는 셈이지.”
“아… 이게 36.5도였군요.”
교수님의 웃음이 ‘아쉬움과 섞여’ 못내 부조화스러웠다.
하지만 여전히 둘은 눈치를 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교수님께서 입을 여셨다.
“오늘 기분이 묘하군.”
둘의 눈이 교수님께로 향했다.
교수님께서는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영혼이 정말로 있는 건지 궁금하네.”
의아했다.
그 분의 말씀은 계속 되셨다.
“나는 개신교 집안에서 자라왔어.
하지만 나는 독실하지 못했어. 신이 과연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지.
테레사 수녀와 같이 사랑으로 가득하신 분조차도 신에 대해선 의문이셨네.
그렇다면 과연 영혼이란 있는 것일까?
나는 죽으면 그걸로 끝인 것일까? 그렇다면 ‘죽음을 두려워해야 하나?’
나는 내 ‘본체’에 대해 궁금하네. 나의 ‘핵심’ 말일세.
하지만 어느 대학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았네.
나는 성경을 믿을 마음도 없고, 거기에 나오는 유태 신화를 믿을 마음도 없어. 본디 유태인들만의 성서였으니까.
나는 모르겠네. 진짜로 신이란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게 끝인가? 신이 정말로 있다면, ‘내 소원 하나쯤’은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교수님께서 나를 지긋이 바라보셨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물리학으로… 증명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신이 모든 시공간의 시발점이라면… 추적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있다면 결국 신에게로 귀결될 것입니다.”
“자네는 신을 믿나?”
“때에 따라 답은 다르겠지만.
‘과학자의 입장’에선 믿지 않습니다.
그런 신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신이 있더래도 ‘과연 제 생각과 같은 신’일까요.”
“나는 미친 걸지도 모르네.
신이 있다면 좋겠어. 아니, 신을 말하는 게 아닐세.
내 ‘본체’ 그러니까 ‘핵심’을 말하는 것일세.
있다면, 그게 내 생각처럼 있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좋네.”
그 분이 마지막을 읊조리셨다.
“나는 알고 싶네.”
네잎 클로버가 당황스런 표정으로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분께선 무엇이 알고 싶은지는 마저 말씀치 않으셨다.
교수님께서는
위대한 산토끼와 네잎 클로버를 먼저 돌려보내셨다.
나는 인사를 드리고서 연구소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내 개인 연구소는 사실 내게 있어서 숙소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교수님과 함께 잠시 주변을 걸었다.
교수님께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여셨다.
“내 말 들어주겠나.”
“언제든지요.”
“잠시 하버드로 들어가지.”
“…교수님 차는….”
그 분이 고개를 저으셨다.
“그럼 제 차를 타시죠.”
“그러세.”
차를 모는 와중에도 해갈되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마왕은 누구일까,
그리고 오늘 무슨 뜻으로 부르셨던 걸까.’
교수님께서 슬픈 눈으로 창 밖을 바라보셨다.
“세상은 아름답군.”
“아직 잘은 모르겠습니다.”
“자네에겐 여분의 시간이 많아서일지도 몰라.”
“그런가요? 사진으로 치면 90분 분량 중에서 60분 분량은 남은 셈이죠.”
“그렇지. 오래 살아봤자, 90세에서 100세까지 밖에 더 살겠나.
필름이 많을 땐 그 화면 하나하나의 가치에 대해 감응이 있을까.
…모르지, 자네라면 있을지도 모르겠지….”
“오늘 들어가시면 다른 생각 마시고 푹 주무시는 게 나을듯 하십니다.”
“그럴까.
생각해보면… 잠이 내 인생의 3분의 1이나 되는군.
70년 중에 23년을 자면서 보낸 건가.”
“휴식은 필요하지요, 몸이든 마음이든.”
“그렇지. 둘은 분리된 게 아니지.”
말을 마치신 교수님께선 고개를 푹 숙이며 뭔가 생각하시는듯 했다.
그러더니 입을 여셨다, “잠시 멈추게”.
나는 차를 길가에 세웠다.
인적 하나 없는 외곽이었다.
교수님께서 밖으로 나오셨다.
“별 좀 보게.”
나 또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많군요.”
“저 별들은 죽는 걱정을 할까?”
“할지도 모르지요.”
“왜지?”
“우리의 과정을 보면… 태양으로부터 조각이 떨어져 나오고, 그 조각이 식어서 지구가 만들어지고, 그 지구의 화합물들이 반응을 일으켜 생물이 됐습니다.
우리는 별의 조각들입니다.
우리가 전혀 상상치 못하는 형식의 생물활동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전혀 다른 방식의 사고활동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차원적으로나, 혹은 구조적으로. 우리처럼 뇌세포와 신경망을 이용하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과학자는 모든 가능성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
“별이 하나의 생물일 수도 있다는 거군.”
“우리가 생물인 만큼.
우리와 전혀 다른 방식의 생물일 수도 있는 겁니다.
별들도 합쳐지고 분열하고 쇠퇴하고 다시 재생성되니까요.
죽는 방식은 2가지 정도 되겠지요.
다른 학자들은 분류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쉽게 수축과 폭발로 분류합니다.
하나는, ‘백생왜성’입니다. 별이 ‘수축’하면서 밀도가 극대화되는 겁니다. 그러면 별의 조각은 작아지지만 질량은 그대로가 되지요. ‘별의 무게는 우리 손톱 하나 크기에 1톤이나 됩니다’.
다른 하나는, ‘초신성’입니다. 별이 ‘폭발’하면서 밝기가 극대화되는 겁니다. 그러면 순간이지만 터져나가면서 밝아지는 겁니다. ‘별의 밝기는 10억개의 별과 맞먹게 되지요’. 이제 폭발하면서 흩어진 가스구름들은 다른 별들의 재료가 됩니다.’
“자연과 비슷하군.”
“아뇨. 이게 자연이고 우주지요.”
교수님께서 웃으셨다.
“이게 자연이고 우주라!”
아이처럼 가슴을 펴며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시더니 마치 별들에게 연설을 하시는 것만 같았다.
별을 향한 교수님의 강의는 계속 되었다.
“빛이여, 나의 빛이여, 오- 나의 빛이여,
나도 마지막만은 혼신을 다해 빛나고 싶네. 이후의 사람들은 그 빛으로 살아갈 수 있겠지.”
마치 연극대사 같이 말씀하셨다.
“…….”
‘왜 이런 말씀을….’
“내가 제정신이 아닌 거지? 나이들다보니 이젠 이렇게 되는군. 지나가면서 웬 미치광이가 있다고 그럴 거야.”
“아닙니다. 그건 의미있는 활동이었는 걸요. 가끔씩 저나 다른 사람들은 의미없이 장난삼아 아무 단어나 지껄이기도 합니다.”
“그건 심심해서 그러는 거 아닌가.”
미소를 지어드렸다.
“그런가요.”
“자! 타세! 우리는 하버드로 가야 해!”
교수님께서 차의 문을 여시더니 장난스레 으름장을 놓으셨다, “하버드 보는 것도 그리 길지 않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나 스스로도 가끔 너무 나태해있으면 ‘공재웅, 깨어나라!’라고 스스로에게 환기를 시키는 편이었다.
그래서 더욱더 그 분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스스로에 대한 자기다짐이실까?’
하지만 그러기엔 뭔가 놓친 구석이 있었다.
‘알 수 없지.’
나는 다시 차에 올라탔다.
교수님께선 다행히도 의식이 환기되신듯 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한결 마음이 편했다.
라디오를 틀어보았다.
뉴스는 아프리카의 내전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아프리카는 지금 전쟁중이랍니다.”
“그렇지.”
교수님께서 웃으시며 대답하셨다.
그러시더니 내 팔을 장난스레 툭 치셨다.
“아야!”
아프진 않았지만, 그 분을 위해 그냥 웃으며 과장해드렸다.
교수님께서 입을 여시더니 찔리는 말을 하셨다.
“자네 적색거성을 빼고 말했더군.”
“아…, 그렇죠. 단지 별이 부풀어 올라서 붉어지는 거지요. 계속 끊임없이 부풀어 오르다가 흩어져서 가스구름이 됩니다.”
어떻게 아셨는지, 교수님께서 내 본심을 말해버리셨다.
“그렇지.
평소의 자네라면 수축과 팽창, 그리고 폭발로 분류했겠지.
내가 ‘폭발’하길 원했나?
10억개의 별빛을 내며?”
수축의 ‘백생왜성’, 팽창의 ‘적색거성’, 그리고 폭발의 ‘초신성’이 별의 마지막이랄 수 있었는데, 나는 중앙의 적색거성을 빼버리고 ‘임의적으로 백색왜성과 초신성으로만 묶어버렸다’.
조금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니었습니다만….
드라마틱한 게 필요한 때도 있으니까요.”
내심 죄송하기도 하여 말을 더 잇진 못했다. 하지만 속일 마음은 없었다. 선의였으니까.
“괜찮아. 내가 매일마다 별만 보는 천체물리학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별에 대해선 조금 알아. 하지만 ‘나도 속고 싶었어’.
내가 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라왔던 거군.”
“사랑하는 대상을 모두 알기란 힘들지요.”
“…그런 거군….”
그 분께선 씁쓸히 웃으시더니 “아, 그런데 아프리카 내전이랬지?”라고 말씀하셨다.
“네.”
이번 라디오 뉴스는 기획특집인 것 같았다.
교수님께서 입을 여셨다.
“신이 있다면 ‘전쟁’은 왜 있는 걸까.”
“신이 없는지도 모르지요. 아니면 전혀 상상 외의 방식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과학이 그렇듯이.”
“자네는 인격신을 믿나? 가톨릭처럼?
아니면 불교처럼 근원을 비인격처럼 생각하나?”
“인격도 비인격도 믿지 않습니다. 정말로 있다면 우리의 상상에 들어맞지 않을 확률이 큽니다.”
“어떤?”
“우리는 신이 있다면 전쟁이 없을 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있습니다.
그렇다면 둘 중에 하나겠지요. 신이 없거나, 혹은 있더라도 우리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겁니다.
정말로 있다면 우리 뜻에 맞춰서는 안 되겠지요.
과학자는 진리를 추구하지, 우리의 바람대로 진리를 틀에 짜맞춰서는 안 됩니다.
모든 가능성에 열려 있어야 하며, 그게 진실이라면 자기자신의 편견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과학적으로 증명가능한 것이 꼭 자기바램대로만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진리 그 자체지, 우리 뜻에 따라 재단할 수 있는 게 아니겠지요.”
“근원. 본체. 핵심.”
“…-”
“나는 그걸 원하고 있네.”
‘……?’
“영혼을 알고 싶어.”
“있다면.”
“그렇겠지. 보통 이렇게 분류하더군.
영혼, 정신, 육체.”
“뭐든지 3가지로 분류하는 게 쉬우니까요.”
“그래, 그래서일지도 모르지.
하나의 영혼에서 우주를 뿜어냈다면 좋겠네.”
장난스레 농담을 했다.
“양자물리학 세미나에서만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시면 됩니다.”
교수님께서 키득키득 웃으시더니 웃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답하셨다, “그렇고 말고”.
저 멀리 커다란 정문이 보였다.
교수님께서 내 어깨를 두드리셨다.
“이제 다 왔군.”
“그렇네요.”
‘…이제 다 온 겁니다….’
하버드의 정문을 보는 순간, 모든 긴장이 풀려버렸다.
나는 교수님을 내려드렸다.
나도 내려 “안녕히 가십시오”하고 인사를 드렸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인 것이다.
차 키를 뱅글뱅글 돌리면서 뒤돌아섰다.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췌장암일세.”
“……?!”
당황스러웠다. 혼란스러웠다.
잠시 동안 믿어지지 않았다.
오늘 하룻동안 놓쳐왔던 그 무엇이 ‘이것’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색치 않고 가능하리라 믿기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요즘에 암은 고치기 쉽습니다. 워낙에 기술이 발전해 있기 때문에.
너무 걱정치 마세요.
제가 존스홉킨스에 아는 친척이 많습니다.”
“존스홉킨스? 그 병원도 하지 못할 거야.”
“……?”
“암이… 간장, 위장, 대장, 소장, 심지어는 심장까지 퍼져버렸네.
내가 걸린 암은… 췌장암 뿐만이 아니라, 간암, 위암, 대장암, 소장암, 그리고 심장암인 셈이지.”
“어떻게….”
나는 얼떨떨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존스홉킨스라 해도 못 고칠 걸세.
나는 살아있는 종양이나 마찬가지야.”
듣고 싶지 않았다.
멍해서 고개를 숙였다.
“재웅… 그 동안 고마웠네.”
내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자넨 최고였어.
내가 이때까지 겪은 최고의 물리학자였어.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죽어서도.”
눈물샘이 터져 나왔다.
고개를 드니 교수님께서 울고 계셨다.
교수님을 안아버렸다.
“교수님…
안 됩니다.
오래 사셔야죠. 이러시면 안 돼요. 안 돼요. 정말이지 안 돼요.
존경했습니다.
…왜 왜… 왜….”
교수님의 떨림이 느껴졌다.
“…나도 살고 싶어….
나도 살고 싶었네.
하지만… 이제 내 나이도… 이미 죽을 때 아닌가.
내 나이도 이제 70에 다다랐어.”
하지만 몸은 떨고 계셨다,
내게 안긴 교수님이 작게 느껴졌다.
말은 속이실 수 있어도… 그 떨리는 목소리와 눈물은 속이실 수 없었다.
교수님의 아픔이…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그 감정의 덩어리들이 내게 속삭였다.
‘…아쉽네…. 슬프고 억울하네.
나는 아직도 삶이 아름답다 느끼는데… 나는 아직도 소년인데… 10대에 맞았던 뺨이 아직도 얼얼한데… 이제 가야 하나….’
내 가슴팍에서 ‘소년’이 울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눈물로 가득 차 있었다.
슬픔이 옆좌석에 앉아 있었고, 아픔이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차를 모는 와중에도 계속 눈물을 닦아냈다.
연구소에 가다 멈추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울었는지 모른다.
창 밖엔 <코스모스> 꽃으로 가득하였지만, 그것은 기억상에만 존재할 뿐, 나는 울기에 바빴다. 울다 보니, 어딘가 화산이 폭발한데도 알아채기 힘든 상황이었다.
나는 아예 차를 멈추고 두 손으로 눈을 그리고 얼굴을 가려버렸다.
얼굴을 덮은 두 손에 눈물이 차올라 마치 샘물을 쥐는 것만 같았다.
교수님이 떠올랐다. 그 분이 우시면서 내게 말씀하셨다.
‘온 몸이 눈물로 가득하네. 눈물이 솟아올라서 어느 것도 할 수가 없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온 몸이 눈물로 가득한데,
목과 가슴에 찬 눈물이 솟아올라 눈물샘을 통해 흘러내렸다.
핸드폰이 울렸다.
“재웅이에요?”
옆 좌석에 올려둔 핸드폰에서 깊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런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키’였다.
그녀의 목소리에 두 손을 풀어버렸다.